​​ JS토크 :: JS토크

속지 말아야 할 3·1절 (삼일절)프레임과 북한 공산주의 전략

Posted by JS토크
2018. 3. 1. 12:19 사회이야기

3·1절 프레임과 북한 공산주의 전략

js토크는 유튜브에도 있어요.

 

 

3.1절 프레임은 북한 공산주의 전략과, 주사파정치인, 기득권,언론, 종교, 교육,등등에서 써먹는 구식방법입니다. 

 

 

이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잘 간파하고 3.1절 프레임으로 한국을 고려연방제, 헌법개헌, 한국공산화하려는 걸 방지해야합니다.

 

 

이승만대통령이란 국부가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기독교라는 건국이념과 함께 한미 방위상호 조약을 맺어 안보동맹을 튼튼히하며, 경제를 발전시킬 기틀을 마련한겁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히 수호하고, 후손들에게 강대국 한국을 물려줄 목표가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JS토크에서 마련한 동영상입니다.

 

 

 

 

 

북한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지만, 민주주의는 없는 국가입니다. 프로파간다는 이런거에요.

 

 

 

한국은 국민이 먼저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북한은 체제가 우선인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북한의  공식 나라명칭은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북한도 민주주의가 국가 명칭에 들어갔네요.  맞아요. 들어갑니다.   공산주의국가지만  조선 공산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지않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명칭을 사용하지요.

 

 

이게 바로  기만술을 사용하는 프로파간다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국민이 따라오도록 선동,선전시키는  전략을 쓰는데,  겉으로는  민주, 국민, 정의를 위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탐욕,이익을 추구하는 거지요. 

 

 

북한은 왕조국가이고, 김씨 3대 세습국가인데 , 무슨 얼어죽을  민주주의 국가겠어요.

 

 

한데, 이런 프로파간다는 한국에서도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있지요.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헌에 열을 올리고 있지요?

 

 

그리고 거기서 핫이슈가 되는 쟁점이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한국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를 넣는다는 항목입니다. .

 

헌법 개헌하는데 자유를 왜빼나요?  자유라는 글자쓰기가 귀찮은걸까요?  거기에 민주주의니까 상관없다는 논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냥 저 윗사진을 봐봐요.  북한공산주의도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헌법 개헌의 프로파간다는 바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싶지않은데, 그렇게 말하면 국민들의 난리를 경험해야 하니까 살포시 같은 민주주의니까 상관없다는  꼼수를 써서  ' 자유'를 지울려고 하는거지요.

쉽게말하면   내 이름이 박수정 인데  성을 딱 빼고 수정이라고 부른다 칩시다. 그럼 나의 조상과  나의  성씨는 어느순간 부정되고 단순히 수정이가 되는거지요.  수 없이 많은 수정이 중에 하나가 되고,  나의 뿌리는 어느새 사라지는거에요. 

 

 

 한국이란 나라의 국가관, 뿌리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했는데,  자유를 빼는 순간부터 언제라도 기회만 오면 오랜시간을 두고 사람들을 선전 선동해서  공산사회주의로 갈수도 있다는게  헌법 개헌에서 자유를 뺀 의미입니다.

 

 

그걸  속지 말고 현명히 간파할 수 있어야  얘기가 시작되는거지요....

 

 

 

 또 대표적으로 반일 프로파간다가 있는데요.  반일 프로파 간다를 세우는 세력은  당연히 일본을 반대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이겠네요.  대표적으로 한국내 주사파 정치인, 친중파 정치인, 북한, 중국 그리고  여기와 연계된 언론, 시민단체등 세력이겠지요. 

 

 

이 세력들은 자신들의 지지세를 모으고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고 싶지만,  그렇게하면 국민들이 지지를 안해주니까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프레임을 짜는거에요.

 

여기에 가장 국민들이 잘 속는게 반일 프로파간다인데요. 

 

 한국 국민이 일본의 식민지  역사를 경험했기에, 자꾸 이부분을 부각시키고 자극시켜 반일 감정을 일으키고 자신들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쓰는거지요. 물론 북한, 중국편에 붙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왜곡시키고,  한국의 국익이 아닌 북한, 중국의  국익을 위하면서요.

당연히 , 공짜는 없으니  이 과정속에 상당한 돈을 비트코인이나 여러가지 수단을통해서 중국에서 받아먹으면서 부역자노릇으로 배는 채우고요.

 

 

또한 이러한 매국행위는 한국의 국부와 기술 각종 정보  기밀을  넘겨주는 것도 같이 하는데, 자신들은 한국을 심각히 훼손 하는 행위를 하면서  정당성을  얻기위해,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수법으로 , 계속  반일 감정 반일 떡밥을 뿌리는거에요. 

 

이게 바로 살아있는  적폐정치아닐까요?.   한국의  똑똑한 국민이 되어  국익을 위하고 싶다면  진짜 국익이 뭔지 제대로 보는법 부터 시작해야 할겁니다......

 

 

 

 

 

 

 

 

 

반일프레임 짜기 가장좋은게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언론이 지원하고, 유명인이 살짝 숫가락  꼽고, 중국에서 지원하는 돈도 받아 먹으면서 소녀상을 막무가내로 세울려고 합니다. 

 

물론 지역주민이나 학교, 단체 등에서 반대하면  적폐로 몰아가고, 정의롭지 않는 세력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는 센스를 발휘해서요 

 

사실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정치인들이 수십년 동안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자주 써먹던 재료들이에요. 

 

자 그럼 이렇게  민주, 평화, 인권, 정의를 외치며  위안부 문제 소녀상문제를 부각시키는세력에게 물어볼게요.

 

위안부 문제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 시민단체는  조선의 공녀를 중국에 바치던 역사는 왜 모른척하지요 ? 

 위안부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많은 공녀들이 중국에 잡혀 갔고, 중국인들에게 평생 개돼지 노예 성노예로 살면서 갖은 고문과, 인간이하의 짐승취급을 받고 한을 품고  죽어간 우리 불쌍한 조선 공녀들은 누가 챙겨주지요?  

 

 

한국의 여성단체도 모른척하기 있기에요?

 

 

 

역사에서 왜 지우려고하지요?  중국에 잡혀간 조선공녀얘기 아는사람있나요?  왜 조선공녀상은 안세워줘 줄까요?  궁금해요.

 

또 마찬가지로 위안부문제처럼  국군포로송환도 얘기해보자구요.  여기 국군포로 송환 아는사람있어요? 대부분 모르지 않나요? 

 

 

위안부문제는 세뇌될 정도로 얘기하니까  알지만 말이에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남한을 침략합니다.

 

그리고 남한은 이로인해 모든 경제 시설이 박살나고,  이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국민이 죽었어요. 

 

625전쟁으로 우린 사상과 이념이 다르면 같은 형제도 죽일수 있도록 세뇌되는게  공산주의라는 걸 자각했어요.

 

 

 

 

그래서  그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해서 수백만명의 한국인을 죽인걸  기억해야겠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있을리 없잖아요 ? 그렇지요?

 

 

또 이과정에서  한국인 국군들은  조국과, 가족 , 국민을 위해서  625전쟁에 참전해서 침략한 북한군, 중국군과 싸웠어요.

 

 

 이 때 수만명의 남한 국군들이  포로로 잡혀서  북한 포로수용소로 가게되었구요. 

 

 포로수용소에서 우리 국군포로들은  쓰레기 취급을받고 비웃음 당하며, 평생을 강제노역하면서,

 

  인간이하 짐승으로 살아갑니다. 

 

 

 이게  625때 북한군, 중국군이 잡아가서 남한국군을  착취하고 괴롭히고 고문한 실태입니다.

 

 

 

근데 이거 누구아는 사람있나요? 

 

 

 

 

 

 

 

 

왜  아무 잘못없는 한국의 국군들은 그런 피해를 당해야하지요?

 

그리고 정부나 시민단체는 왜 국군포로 문제를 공론화 안하지요? 

 

 

이번에 평창올림픽때  백두혈통 김여정이  김정은 특사로 청와대에 왔다면서요?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포로 송환해라고 해야 하는거아닌가요? 

 

 

"기회는 공평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멘트는 잘쓰더구만요.  

 

 

 

북한에 뭣만 나면 퍼줘고 아낌없이 퍼주면서  625 전쟁 침략으로 북한에 잡힌 남한 국국포로는  왜  구출 안해주는거에요? 

 

 

시민단체도 조용하고 언론도 조용하고 정치인도조용하네요, 문재인 대통령도 조용하구요.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살아있는  국군포로와 그 유가족들을  한국에 모셔와야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국이 조국이란 죄로   북한군에 맞써 싸우다 잡혀 가신분들인데 말이에요.  

 

이게 바로 이땅의 민주와 정의 인권을 위하는거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인권 얘기나왔으니, 민변 얘기도 잠깐 할께요.. 

 

 

그렇게 인권 좋아하면  중국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구르인들 강제로 잡아서 인종청소하고, 여자들은 강제로 잡아서  저멀리 중국으로 보내고, 중국 농촌총각과 강제 결혼시키는 실태, 

 

중국인이  신장위구르인을  개 돼지  죽이듯이 패서 죽이는 실태, 

 

 

중국에서 위구르인들 죽이고 인육파티하고  안구적출, 장기 매매 하는 실태는  왜 조용히 있는거에요.

 

한국언론도 마찬가지고요.

 

 

 멀리 갈것이 아니라   북한을 탈출한  북한주민이 한국에 넘어오다가 걸려서 강제로 북한에 송환될때,  왜 시민단체, 민변, 인권단체, 여성단체는 조용히 있는거에요?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니까 북한 주민의 인권을 존중해서 한국에 오게 해야지요.

 

 어차피 북한으로 송환되면 북한주민은 총살이거나, 감옥에가서  고문과 학대를 당할건데 말이에요.

 

 

자신의 정치적 이득과 지지세 모을때 필요하면  정의와 민주 인권을쓰고,  자기이득에 손해되면 안하는게   한국의  인권,평화,정의 단체인걸까요?

 

 

 

 

 그러고보면 한국의 여성단체는 새누리당이나  보수쪽 인사가 성추행같은 문제 일으키면  적폐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요즘 좌파쪽  유명 문인, 연예인 기득권자 등이 추악한 성 폭행 성추행에  휘말리니까 조용히 있던데요..

 

 

 

이게 바로 그유명한 내로남불인건가요?  같은 편은 뭔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팀킬 방지 시스템 작용인가요?

 

 

아 그래서 북한과 중국의  한국 위협 및 폭력 보복에는  조용할까요 ? 뭐 얘기 꺼내면 너무많네요.

 

 

 

 

 

  

3.1절.  삼일절은 말이죠.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던 유관순과  애국 국민들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응원했던 국민들이 바로 3.1절의 주인입니다.  근데, 3.1절 프레임을  상해 임시정부와 연관시켜 프로파간다를 짜는  세력들이  있더군요. 

 

 

 진실과 정의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닙니다. 

 

 3.1운동은  유관순 등의 애국열사와   대한독립을 소망한 국민들이 주인공이고 국민들이 일으킨 만세운동입니다.  한데 3.1절을 일으킨 국민들은 어느새 소외되고 , 

 

 

 상해임시정부가 주인공인듯 프레임을 씌우고 거기서 부터 한국의 국통을 찾으려는 이상한 프레임을 짜는 세력들이 있더라구요.

 

 

이 사건을 쉽게 표현하면 사진하나 사용하려고해도 저작권이 있기에 사용못하고 무료 사진을 써야하는게 바로 정의입니다. 

 

 

 근데 3.1운동은 유관순과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일으켰는데, 그 과실은 왜  상해임시정부가 가져갈까요?  

느닷없이 상해임시정부가 3.1절 계승했다고하면, 자연스레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법통을 잇는건가요?  

여기엔  큰 비밀이 있습니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지는 프레임을 짜는 이유에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과 연관지어 헌법개헌도 진행할려고 하는거지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상해 임시정부는  그냥 임시정부일뿐이에요.

 

 

 

그걸 자꾸 3.1절과 연관시켜서 한국의국통을 이었다고 프레임 짜지마세요. 계속 국민세뇌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 선전 세뇌전략인가요? 궁금하네요

 

 

상해임시정부의  인사들이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세력으로 이루어졌기에  요즘으로 치면 좌파 우파가 같이 참여했기에 이걸 프로파 간다로 사용하는 거잖아요.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으니까,  한국이 북한의 침략이나중국의 침략전쟁 등 기타이유로 자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공산국가화 되면 , 상해임시정부의 지분은  공산주의 진영의 북한쪽에게도 있으니  독립운동하지말고 

 

 

 공산화 되어서 그렇게 살라고 그렇게 큰 그림 그리는거 아닙니까? 더불어 헌번개헌까지 해서 밑밥 깔아놓구요. 

 

 

 

이게 딱보면  중국이 한국을 점령 식민지화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고구려 백제 역사를 자기역사라고 동북공정하고,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던" 한국은 옛날부터 중국속국인 식민지 국가" 였다는거와 일맥상통한걸요.  

 

큰그림 그리는수법이요.

 

 

 

아 그러고보니까  한국정부는

중국의 사드보복,

롯데 기업 보복,

 

 

한국국기 짓밟기, 한국인 관광객행패,  한국인손님 거절 등등

 중국의  유치한 보복에는 늘 조용히 입다물고 있던데요.  거참  이상하네요.

 

 

국민들은 중국,북한,남한내 주사파 ,남한내 친중정치인 라인으로 이어지고 이를 동조하는세력이 한국 정치,교육,법조, 역사,공무원, 노동단체, 언론,국방 등등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걸 꼭 기억합시다.

 

 

 

그리고  3.1절을 상해임시정부와 연관지어 이상한 프로파간다 씌우는걸 늘 경계합시다.  3.1운동은 상해임시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주인공이 되고, 그과실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얻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3.1운동의 결과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주체가 되어야합니다

 

이승만 대툥령 무료 사진 있으면 사진올릴려고 했는데 찾아봐도 없네요. 이게 현실입니다. 

 

근데 3.1절을  상해임시정부가 초상권, 저작권료도 없이 가져가게 만드는 형국이고 ,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게 조종하는  세력들이  프로파간다를 활용해서  3.1 절을 이어받은 상해임시정부라고 프레임을 씌웁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의 국통을 찾지 마세요 

 

 

그냥 상해임시정부는 임시로 이름짓고  사용한 것일 뿐 국가체제 자체도 아니었지요.

 

물론 일제식민지시절 독립운동한 단체라는건 우리 국민들 모두 인정합니다. 자 그럼   이승만대통령을 대한민국 국부라고 하는 이유를  얘기합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에 2개의 큰 빚을 졌어요.

 

이건 인정 안할 수없는 것이고 그 이유때문에  이승만대통령을 국부라고 하는거지요.

 

 

 

첫째.  세계 제 2차대전이 일어나고 일본이 패망할때  한국뿐아니라, 만주의 만주족도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려고 했고, 여러 곳에서도 독립하고 자기 나라를 세울려고 했지요. 하지만 한국만 독립합니다. 

 

 

그이유가 뭔지아세요? 딱한가지입니다. 이승만대통령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만약 이승만대통령이 한국사람이 아닌 만주족사람이었다면 만주족이 독립해서 독립국가를 세웠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국의 국부라고 하는거지요.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학벌도근사합니다. 

 

 

이승만대통령은 영어도 잘하고 친미파였으며, 한국의 독립을위해 결혼까지  미국내 영향력이 큰 유태인을 의식해서  유태인여성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 큰  인사들과 교류하며 인지도를 쌓습니다. 미국은 이런 친미적이고  말이 잘통하는 똑똑한 사람이 자기편으로 있으니 외교와 협상이 되었던 거지요. 

 

 

국제정세속에 반공의식을 가지고, 친미파이며,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속에서 나라를 운영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었죠.

 

 

 

그래서 미국이 한국을   독립시키는데 이승만대통령의 외교술이 큰 힘을발휘하는거죠. 이승만이 만주족이라서 만주의 독립운동을 바랐다면 만주족이 독립하였다고 전 백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런걸 뒷받침 해주는게 있지요.

 

 

 20여년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 할때  쿠르드족도 독립운동하였지만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외교를잘하고 친미적인 똑똑한 사람 즉 이승만 같은사람이 쿠르드족에게 있었다면 독립했을겁니다.

 

 

 

쿠르드족이 독립못한이유는  국제사회의 요구, 강대국에게 뚜렷한 목표와 ,협상 그리고 같은편인걸 인식하고 함께할 외교술을 발휘해야 할 인재가 없었다는 거지요.

 

무조건 미국만 믿고 손을 놓고있거나, 단순히 전투만 벌이면 테러단체로 인식할 뿐입니다.

 

 

 마치 한국 해방전 과 비슷하지않나요?  원자 폭탄 2방으로 일본을 패망시키고 한국을 독립시켜준 미국앞에 이승만 대통령이 없고   반공의식이 확실하고 자유민주주의시스템을 이어나갈 한국인이 없었다면 쿠르드족처럼 한국역시 독립못했겠지요.

 

 

 

둘째,  중국은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옛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있고,  그 중화사상속에는  한국은 속국,식민지여야 합니다. 그래서 고구려,백제도 중국꺼로 만들고있고, 실제로 시진핑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원래 중국 식민지였다고 말했던거지요.

 

 

그리고 실제로 중국은  1950년 모택동 시절부터  중국이 수복해야할 고토로 한국을  설정해놓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죠.

1950년에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미국등 연합국의 도움으로 남북통일 될 찰라  한국에 남하하여 남북통일을 방해합니다.  또한 625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려있는 찰라에  강제로 티베트를 침략하여  정복하죠.

그뒤에도 인도와 전쟁을 하며 인도땅을 일부 뺏고, 베트남과도 전쟁을 하는등  자신들이 영토확장을 위한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한국 침략 정복 전략을  빨리 간파한  이승만대통령은 미국과 한미방위상호 협정을 체결합니다.

 

한국을 누가 쳐들어오면 미국이 자동개입하는 협정이고,  

 

미국같은 강대국이 한국같은 초라한국가와 이런 협정을 맺는거 자체가 굴욕인데, 이승만 대통령의 빛나는 외교술로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미국이 소말리아 같은 나라에 이런 협정을 맺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준다는건데.. 이게 가능이나 할까요?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한미 방위상호조약 덕택에  미국의 자동개입을 우려한 중국은 인도를 침략하고 베트남과 전쟁을하고

티벳을 점령해도 한국을 점령하지 못했던거지요. 이 빛나는 조약 덕분에 또 한번의 한국은 산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미중패권전쟁과 맞불려 중국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영토확장 전쟁으로 역사전쟁, 귀화이민 전쟁, 국제결혼전쟁, 평택차이나타운건설등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용한  한국점령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이것역시 헌법개헌과  지방분권화를 통해서  외국인이 투표에 참여하고, 중국인을 적극 귀화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쓰고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한내 주사파, 남한내 친중파 북한, 중국  4개라인은  큰틀에선 한셋트로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네요.

그러고보니 인도태평양 방위동맹에서 탈퇴하고  북한 중국라인의 동맹에 한국이 가입했겠죠.

제 2의 가쓰라 테프트 밀약이 다시나올지도 모르는 험란하고 풍전등화같은 현실속에  우리의 한국민들이  깨어나고 국익을 위하는 올바른 사람이되어서 한국멸망을  프로젝트를 저지하고  북한 흡수 통일, 만주고토수복, 몽골연합, 모계형제국가와의

 

연합을 통해서 다시한번  수천년만에  온 한국의 로또 복권에 당첨되길바랍니다.

 

 

 

한국의 지금현실은  잘되면 현재 한국땅덩어리가 수십배 불어나고,  잘못되면  한국 민족 멸족  한국멸망의 미래, 한국의 미래가 기다리고있습니다. 이제 그만 깨어나고 국익을 위하는 국민이 되길바랍니다.

 

3/1절은 그 태동을 알리는 시작이길 바랍니다 .

 

 

 

 

 

2018/03/04 - [사회이야기] - 태극기집회/ 3.1절

박근혜 대통령구출하기와 친중파의원의 상극

 

 

▶2018/03/11 - [사회이야기] - 한국사람은

자유민주주의속에서 살고있나?

 

 

2018/05/15 - [기업이야기] - 오렌지팩토리를

구출하라. 한국기업이 사냥당하고 있다.

▶2018/05/12 - [정치,인물] - 탈북자단체의

 "우리민족끼리" 대북전단 (대북편지)

 

 

 

 

 

 

 

지금의 현실 즉, 멸망하는쪽으로 지는 게임에 올인하는 요즘의 한국의 모습을 똑똑히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미국을  배신하는 문재인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그옛날에도 조선이 미국과 영국을 배신하고 러시아에 아관파천한 댓가로  조선이 차지해야할 만주,연해주 고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걸  꼭 기억하세요. 

 

 

한국과 같은 모계 민족 형제인 터키 역시 오스만제국이라는 강대국에 있다가  지는편에 줄 서는 바람에 쪽박차고 그 넓은 땅덩어리 다 잃어버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 이기는 쪽에 줄을 서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한국의 국운에 굿럭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징기스칸의 리더십과 몽골제국의 형성

Posted by JS토크
2018. 2. 28. 22:41 정치,인물

징기스칸과 몽골제국의 형성 (칭기즈칸의 리더십) (Genghis Khan, 成吉思汗)

 

 안녕하세요 ^^*. . Js토크는유튜브에도 있어요

 

 

 

징기스칸 4분 짜리 동영상이에요

 

 

 

 

 

징기스칸과 몽골제국의 형성 (칭기즈칸의 리더십) (Genghis Khan, 成吉思汗)

 

         징기스칸 (역사상 세계 최고의 패왕이자 몽골에서는 신으로 불리는 사나이)

 

                                                                 출생~사망     1162년 -1227년

 

                                                                재위기간       1206- 1227년

                                    

                                                                지역                 아시아

                                                            

                                                     왕조                 몽골제국

 

여담이지만 지금도 몽골에서는 징기스칸(칭기즈칸의 재림을 기다린다고한다.

 

 

 

1. 징기스칸  몽골에 태어나다.

 

12세기 몽골 부족사회에서 징기스칸이 태어났다. 

 

 

샤먼은 " 이 아이는 신이 지상에 내려온 것이라 말하며  몽골부족을 크게 융성시킬 아이니  징기스칸의 아버지에게 잘 키워달라" 고  당부했다고한다. 

샤먼의 예언처럼  징기스칸은 훗날 역사상 최고의 제왕이 되었는데,  여기에 기가 막힌 조물주의 법칙이 숨어있는 듯하다.

 

징기스칸의 아버지는 예수(?)게이 였는데 , 

 

 

마음속에 떠오르는게 없는가? 

하하 눈치챈 사람말고는 비밀로 하기 약속해요.

1162년 오늘날 몽골과 시베리아의 접경지역인  오론강 기슭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보르치킨족의 족장 예수게이와 올크누트부족 출신 후엘룬사이에 태어난 태무진이 바로 그다. 

하지만  테무진이 9살 되었을때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보르테와 약혼시키고  타타르족 야영지를 방문했다가  독살당하고만다.

 

이 당시 몽골 부족사회는 수십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져  서로싸우고 약탈하며 상대 부족 여자를납치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극한의  추위와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탓에 수십 개의 부족들은 단합하지못하고, 

 

 

서로 뺏고 죽이며 자기부족의 안위만을 챙기던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이런 환경속에  갑자기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어버리자 테무진과 그 가족들은 부족에게서 버려졌다.

불과 9살된 테무진은 가족들과 함께 오론강 기슭에서 채집과 사냥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된 것이다.

 

 

 

이때 테무진은  숙명의 라이벌 자무카와  안다 즉 의형제를 맺었고,  사냥의 규칙을 어긴  배다른 형 백테르를 활로 쏴 죽인다. 

 

척박하고 극한의 땅에서 살아야했던 테무진은 사냥의 규칙을 만들고 서로 협동하여 사냥하고 사냥물은

 

 공과에 따라 공평히 나누기로 했는데

 벡테르가 이걸 여겼기 때문이다. 불과 9살의 테무진은 이런 삶의 방식을 깨우쳤던 것이다.

 

1178년 16살쯤의 테무진은  부르테와 혼인하고, 수십개의 부족 중 강한 부족이었던 케레이트 옹칸에 휘하에 들어가 의지한다.

 

 

케레이트 부족은  926년 발해멸망당시  발해유민으로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뿔뿔히 흩어졌고,

 

 

훗날 몽골제국의 유럽정벌에 따라나서 지금은 카자흐스탄을 이루는 소수국민으로 살고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런 소수국민을 위해 단군동전까지 만들 었다고 하니,   카자흐스탄 계보 역시 단군을 이었다는 의미심장한 추측을 해본다.

 

 

 

 

 

 

 

 

테무진이 성장하는 과정중에는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 부족에게 빼앗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원래 테무진의 어머니 후엘룬도 메르키트부족 사내와 결혼하려 했었느데,

 

테무진의 아버지가 납치한 것이었으니 이 당시 몽골 부족사회의 열악한 시대상황을 알만하겠다. 

메르키트 부족은 이런 오래된 원한을 이유삼아 테무진의 아내를 납치한다.

 

테무진은 몹시도 마음아팠지만 인내하고 힘을 기르며  옹칸과 안다인 자무카를  끌여들여   마침내 메르키트 부족을  공격하여  승리한다.

하지만 막상 아내 부르테를 구출하니 이미  부르테는 메르키트 부족사내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징기스칸의대범함과 영웅적인 모습을  알수 있다.  사실 이 문제로 징기스칸은 몇 일을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끝없는 명상과 고민으로 차후 행동을  결정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임신한 아이도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 아이가 훗날 주치가 되는것이고, 

 

 

몽골제국의 영토확장에  큰 기여를한다.

 

 

만약 징기스칸이 형식적인 모습으로 아내를 용서하고 주치를 용서했다면, 주치는 훗날 징기스칸에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컷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하고,

 

 추호의 차별없이 아내와  주치를 대했기에,

 

 

징기스칸의 제국은 세워지고 경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아내가 납치당해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오면 받아들일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당시 테무진은 아내가 잘못 없음을 인정하고,

 

아내가 임신한 주치 역시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내로, 사랑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결과론적으로  이러한 테무진의 마음가짐은 몽골제국이 부족이나 가족같은 혈통이 아닌 능력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테무진은 아들 주치와 옹칸의 딸을 결혼 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처음엔 옹칸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내심 테무진의 군계일학적인 모습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옹 칸의 자식들이  테무진이 옹칸 사후  부족을 정복할 것이라는 계속되는 반대 의견을 보이자 

 

옹칸 역시 테무진을 죽일 계획을 세우게된다.

 

이 당시 테무진은 옹칸의 급습 공격에 대처하지 못했고, 따르는 부하들과 도망쳤는데,  옹칸의 부하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부하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테무진을 지킨다. 

 

 

몽골  부족사회에서의  싸움은  숫자가 많은 부족이 적은 부족을 이기는건 당연한 것이었고,  질 것같으면 우두머리를 버리고  도망치는게  관례였는데 이것을 테무진의 부하들이  깬 것이다. 

 

 

그만큼 테무진과  부하들과 관계가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신뢰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였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고

테무진의  인품과 부하 통솔 리더십을 볼 수있는 한 단면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발주나의 맹약'이 맺어졌는데,  옹 칸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19명의  부하들이 흙탕물을 마시며 맹세를 한 것이고,  그걸 '발주나의 맹약'이라 한다.  그 들 19명은 친족도 아니고, 같은 부족들로 모인 게 아니었다. 

 

 

부족도 다르고 , 친족도 다른  19명의 사람들이  과감이 전통, 혈통 사회의 가치관을 깨버리고 모인 것이다.

 

서로 공통된 목표를 위해 동료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이 있다 하겠다.

 

훗날 우리가 다시 만주고토 수복을위해 나선다면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 뒤 테무진은  힘을 키워  옹칸의 케레이트족과 싸워 이기고, 이 여세를 모아 나이만까지 정복한다. 이때  테무진은 자신의 안다  자무카와  숙명의 싸움을 벌이고 승리한다. 승리한후 자무카와 함께 하고싶었으나,

 

 

 

자무카는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음을 알고 죽음을 선택한다.

1206년  테무진은 쿠릴타이를 연다. 

쿠릴타이는 부족들의 집합의사를 표현하는 회의기구로  쿠릴타이로 만장일치 되어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때마다  몽골부족은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곤 했다. 

 

 

우리나라 역시 신라의 화백, 백제의 정사암 같은 귀족 회의 기구가 있었고,  이것은 몽골의 쿠릴타이와 같은 개념이다. 

이 때  테무진은  징기스칸 이라는 지도자가로 선출된다 .

 

 

 

 

 

 

 

징기스칸이 48세 되던 해 1210년 금나라 사신이 몽골의 복종을 요구한다. 

이에 징기스칸은 평소 계획했던 금나라 정벌의 시기가 왔음을  알고  금나라와 전쟁을 선포하고, 기병 6만 5천여명으로 금나라를 공격한다. 

 

 

몽골군의  말은 크기는 작은대신 체력이 좋아  먼 거리를 이동해도 지치지 않았고,

몽골군 특유의 건조한 육포는  휴대하기 편하고

 

말위에도 식사가 가능한 큰 장점이 있어 전쟁에서 최고의 기동력을 살릴수 있었다. 

후에 수백년이 흐른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나타나

 

전쟁의 기동력을 살리기위해  통조림을 사용했다고 하니 , 

 

징기스칸의 마른 육포 사용은 시대를 앞선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전쟁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징기스칸은 금나라를 정복하고,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차지한 호라즘과 교역을 준비한다.

 

이당시 징기스칸은  호라즘을 정복할 생각이 없었고, 호라즘과의 상업적 교역을 원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로의자존심이 걸린 트러블이 발생했고, 술탄 무하마드 2세는 징기스칸의 사신을 죽이는 사건을 발생시킨다.

 

 

평소, 징기스칸은 자신이 파견한 사신은 징기스칸  본인의 얼굴 , 본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신을 엄청 소중히 여겼는데, 사신이 죽어버리자  분노에 차서 호라즘 공략에 나선다. 

 

 

강대국이라 평가할 수있는 호라즘은  징기스칸 군대에 의해 철저히 무너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것은 사신을 죽여서 호라즘을 박살된 징기스칸이  왜  사신을 죽인 고려는 침공하지 않았느냐이다.  병법에도 가까운데 있는 적을  우선순위로 침략 정복하여  물자와 병력을 충원받고, 

 

 후방에서 공격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걸 최고로 치는데 말이다.

 

 

징기스칸 부하들 역시  고려먼저 정벌하자고 수십번을 얘기해도  징기스칸은  못들은 척 웃으며 넘겼다고 하니 그 의도가 상당히 궁금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선  얘기하지않겠다.  물론 아는 분들은  짐작하겠지만....

 

 

 

 

 

 

 

 

1. 인재를 알아보고 그 인재가 뛰어난 장군이 되도록 지도한점 - 수부타이, 바투 ,무칼리, 제베 등 뛰어난 장수와 수많은 인재를 발굴하고 지도하여  그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사 뛰어난 장군에 이름을 올리게한 점. 

 

수부타이는 역대 세계최고의 장군 다섯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강력한 장군이라고한다.

 

 

더불어 징기스칸 아들들 역시 뛰어난 인재들이라  징기스칸 사후 징기스칸이 이룩한 땅 덩어리를 두배로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2. 새로운 기술 문명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여  문화를 이루고 뛰어난 군사전략으로 사용한점-  다른 나라를 침략할때  그나라를 정복한후 그나라의 기술을 배척하지 않고 흡수하여,  군사전략으로 사용한 점은 몽골군의  공통된 모습. 

 

 

 화약을 사용하여 유럽군과 싸운것이나 포로들을 통해 배운 공성전 전술과 무기를 받아들이고 포로 기술자들을  대우한점 .

그리고  그 기술을 정복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한 점은  징기스칸의 열린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

 

 

3. 능력에 따른 공과를 분명히하고 재물을 혼자 독식하지  않고  공평하게 나눈점 - 징기스칸의 몽골군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시 

적을 죽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엄청난 재물을 수뇌부나 군사가 전투 도중에 차지 한다거나, 독식하지 않았다.

 

 

명령과 규율이 명확이 잡혀있어서 싸움중에는 규율을 지키고, 전쟁 승리후에 재물을 공과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사용했고,  이러한 점은  시대를 앞서는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4.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점 - 각나라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었고, 정복자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할시에 종교를 탄압했다.

 

근세 유럽만 하더라도  마녀사냥이라고 해서 가혹한 종교탄압을 하지않았던가? 하지만 징기스칸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자기 종교에 따라 생활하는걸  허용했다.

 

 

징기스칸의 이러한 리더십은 아들들에게도 잘 전해져서 불과 70년만에  몰골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항하지 않으면  그나라 고유의 통치방식, 종교를 인정했던 징기스칸의 대범한 리더십은 분명 시대를 훨씬 앞선  혜안이었다.

 

 

5. 국가 공통목표를 천명하고  국민을 단합시켜 비전을 가지고 온국민이 함께 나아간점-  몽골부족사회는 극한의 추위와 열악한 환경탓에  부족들끼리 단합하지 못하고 약탈,납치, 살인으로  몽골 부족 사회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징기스칸은 부족들을 통일시키고, 그 힘을 단합시켜  눈을 외부로 돌려 파이를 키운뒤에 다른 나라로 부터 물자와 자원을 얻는 방식을 통해 몽골 부족사회의 발전과 풍요를 가져왔다. 

 

 

징기스칸이 태어나기전에  극도의 추위와 가난 부족들의 싸움으로 내부 발전을 하지못하고 , 춥고, 배고파  얼어죽던 사람들은 징기스칸이라는 지도자를 통해  꿈을 키우고 몽골 부족 특유의 장점을  깨닫고 세계를 향해 진격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세계사의 전기를 이룰 수 있었다.

 

 

 

6. 전쟁을 준비함에 있어서 끝임없는 시뮬레이션과 토론과정을 거쳐 이길수 있다는 확신이 들때 비로소 공격한점 - 징기스칸의 시대를 앞서는 리더십을 볼때면 깜짝깜작 놀란다.

이런 시뮬레이션을 철저히 하는게 미국이고,  현재의 미국을 보면서 징기스칸의 몽골을 가장 잘 배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징기스칸은 전쟁을 준비함에 있어 자신의 뛰어난 장수들이 서로 토론하고 전술을 짜는걸 

 

진두지휘 하는 역활을 하며  자신의 부하들이 뛰어난 전략가, 뛰어난 장군이 되는 방법을  전수했다.

 

 

뛰어난 영웅  한명이 나와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지는게 아닌,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들을  자신 옆에 서는 위대한  장군으로 만든 점은 이러한 시대를 앞선 징기스칸의  탁월한 리더십에 있었다.

 

 

7. 잘못이 없는 자신의 아내를 용서한 것처럼, 칸의 권력을  남용하지않고  관용을 베푼점 - 징기스칸의 아내가  다른 부족의 아이를 임신했을때 ,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아내를 용서한 점은 징기스칸의 인품과 관용을 볼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몽골군이 유럽침공 했을때  몽골군에는 유럽인이  있었다고한다. 

 

 

국적이 어디던 어느나라 사람이던 상관없이 가치관과 목적이 맞는다면 동료로 함께 가는 몽골군의 전략은 징기스칸의 가르침에서 나왔으며, 어느나라 국적이던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함께 갈 동료들은 차별하지 않고

 

포옹하는 징기스칸만의 

리더십은 시대를 너무 앞선 혁신적인  것이었다.

 

 

 

 

 

 

 

징기스칸은 인도 북부를 모두 점령하고 서하 공격을 준비한다.

 

 

탕구트는 이미 항복했지만 호라즘 원정때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탕구트 정복을 위해 고비사막을 넘어가던 1226-7년사이  징기스칸은 진군중 잠시 휴식겸 야생마를 사냥한다.

이때 야생마들이 갑자기 징기스칸에게 돌진하자  깜짝놀란 말이 날뛰어  징기스칸은 말에서 떨어지는 큰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탕구트와의 전쟁은 계속했고,, 징기스칸의 상태는 더욱악화되어 수도를 포위하고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1227년 8월

하늘은 징기스칸을 데려간다.

 

 

징기스칸은 자신이 죽은후에도  세상을 향한 진군을 멈추지말 것을 유언했고, 이를 신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징기스칸 사후, 그의 용맹한 부하들과 , 아들들은 징기스칸이 차지한 땅을 훨씬 넓혔으니  

 

징기스칸만큼  부하들과 아들들의 충성을 받은 영웅은 역사상 또  있기나 하는걸까?

 

 

-징기스칸의 말-

 

 

"우리는 다같이 싸웠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   나는 향략을 싫어하고 절제를 존중하오. 

나의 사명이 중요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무거웠소.

 

나와 나의 부하들은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소.

 

 

내가 죽은뒤에도  나는 세상에 위대한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오.  세상에는 왕들이 많이 있소.  아마 그들은 계속 내 이야기를 할 거요!”

 

-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징기스칸을 지난 천년간  인류사에 가장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선정했다

1995년 12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인물로 징기스 칸을 꼽았다.

 

 “징기즈 칸은 사람과 과학의 교류를 통해 지구를 좁게 만들어 세계를 뒤흔들고 근본적인 변화가 오게 만들었다.”고 선정 이유를 말했다.  

 

 

 칭기즈 칸은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1997년 4월 뉴욕 타임스 선정)’로 뽑히기도 했고, 500대 기업 CEO들이 뽑은 서기 1,000

 

년대 밀레니엄 최고의 리더(1997년 <포춘>지 선정)로 뽑히기도 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쫒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고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숙명이었고  내 직업이었다.

작은부족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는 십만

백성은 어린애 , 노인 다합쳐  이백만이 되지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말라

 

 

나는 내이름을 쓸줄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목에 칼을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다가 살아나기도했다.

적은 바깥에 있는게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

나는 내거추장스러운것을 싸그리 쓸어버렸다.

나는 나를 극복하는 그순간 징기스칸이 되었다.

테무진이 징기스칸의 호칭을 받으며 몽골의 칸을 선출될때

 

 

부족들을 단합시키고,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때

 

부족민들에게 선포했던 시입니다.

 

 

 

 

 

▶2018/05/02 - [윤회,명상,종교] - 이순신장군 권율장군의

스승 구봉 송익필 선생님의 족부족

 

 

2018/03/29 - [정치,인물] - 2160년만의 물병자리전환

으로 한국의미래

 

 

지금 이시대를 사는 한국인 역시

남북통일과

만주고토 수복의 시대적사명 

 

시대정신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하루빨리

 

 

요즘을 사는 젊은이들이 시대사명을 깨닫길 바랍니다

그래서  남북통일 만주고토수복의 끝 꿈을 이루는 지렛대가 되길

 

 

바라며, 

끝없이  뻗어갈  강대국 한국을 세우길 바라며 ,

 

이만 징기스칸의 리더십과 몽골제국의 형성 편을 마칩니다.

모래시계처럼 지나가는 빠삐용입니다.

Posted by JS토크
2018. 2. 28. 11:32 사랑, 문화

(모래시계처럼 지나가는 빠삐용입니다 )

 

 

진실은 그 무게가 무거워 알기어렵습니다

사랑은 알순 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추억이란 사랑이 지나간 뒤 회상하는 것이고,

...

 

삶은 진심을 찾아 사랑을갈구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사랑을 회상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하루 하루 삶속에서 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누군가가 있길 바랍니다.

 

내가 느낄 수없는, 내가 볼 수 없는곳 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어딘가엔 꼭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건

 

애인이 되는건, 결혼을 하는건

 

삶을 회상하는 것 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네요.

 

JS의 연인을 추모하는  일기중에서 발췌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항상 진실과 그 진실을 숨기기위한 이중성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낄수는 있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사랑만을 믿고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린 확인하려 합니다. 

 

 

"당신은 날 사랑하나요? 정말 사랑합니까?

그렇게 사랑한다면 내가 알 수있게 표현하세요"..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서로의 눈빛과 몸짓 은유적 분위기로 사랑의 PR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건 표현하기도 느끼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가령 내가 널 만나기위해  6시까지 갈수없는 상황일때,

가령 내가 널 만나기위해 중요한 약속까지 포기 할때,

가령 내가 널 만나기위해  감기 독감으로 아픈데도 당신에게 왔다고 칩시다.

 

 

 

당신의 얼굴 보기위해 왔다면

 

당신은 그냥 단순히 왔다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상대방이 힘든 상황인데도 당신을 보기 위해 왔다고는 생각안할테까요.

 

상대방과의 만남, 연애, 결혼은 반지의제왕이 내마음대로 상상하는대로 되는게아닙니다.

 

 

그 사람과 만나고 노래부르고 술먹고 다투고 화해하는 많은 일상의 쉼터속에

둘만의 진심과 교감으로 믿음이 생겼을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자존심을 세우고 하는게 아닙니다.

싸우고 화해하는 일상의 많은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졌을 때  축가를 부르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나는말해요.

 

결혼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하는게 아니라

가장 사랑하고픈 사랑과 하는거라고요.

 

 

믿음과 함께 지내온 단단한 일상의 힘이 축복하기에 우린 결혼을 합니다.

 

 

 

 

 

 

 

 

 

김종국의 회상도 아니고 산울림의 회상도 아닙니다.

장범준의 회상도 아니고 박정현의 회상도 아닙니다.

 

삶속에서 지나가버린 가슴아픈 사랑을 회상하는 것이빈다.

 

한번 지나간사랑은 다시하는건 어렵고,

그래서 사랑은 타이밍이고 그 시기를놓치면 이루기 힘들다고 합니다.

 

 

채팅이나 소개팅 동호회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도 성행하는걸 보면

사람이 누군갈 사랑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건지 알 수 있습니다.

 

 

그사람이 유유마시는 모습, 그사람이 영화 보는 모습, 그사람이 술을먹는 모습,

그사람이 웃고 있는모습,  웃음,애교,울음 등 작은 습관들까지 있지요?

 

 

하지만 사랑이 지나가면  잊어야하는 것들입니다.

 

 

사랑이라는 의미와 관계를 통해

잠시 나와 너라는 울타리로 소중한 사랑이 시작되었지만

 

헤어지게 된다면요. 당신이 붙잡고 있는것을 잊어야합니다.

 

남자친구 , 여자친구, 애인이라는 단어는 추억에서 지워야합니다.

 

있을때 잘합시다.

 

 

 

 삶속에서 나에게 찾아온 인연이, 사랑이 떠나가면 허무합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할 것은 사랑을 회상하고, 붙잡는게 아니랍니다.

놓아주는것이고 잊어주는 것입니다.

 

 

지나간 사랑은 회상한다해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현재의 남자친구, 현재의 여자친구

현재의 애인,연인에게 진심의 마음을 보여주는겁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은 아마 사랑하는 연인이 없었을 겁니다.

 

내일 지구가 망하고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래요?

마음껏 치킨먹는다. 마음껏 피자먹는다. 햄버거 먹는다. 저녁메뉴추천해달라. 맛집은 어디있나요? 이런질문을 할건가요?

 

 

홍대 맛집 유명하던데  찾아서 먹으러 갑시다라고 말할 건가요?  

 

우린어쩌면 딱 하루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게 아니라  즐겁게 보내기위한 생각으로 소중한 하루를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순간 당신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사람과 당신이 행복해지기위해  멀어지는 방법을 택하지말고 가까워지는 법을 선택합시다.

의미있는 눈짓, 몸짓으로 행복은 멀리있지않고, 높은곳에 있지도 않다는걸 느낍시다.

 

 

내일이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아니 지구가 망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신이 할일은 사랑하는사람과 잠시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달콤하고 즐거운 대화속에 맛잇는 음식을 먹는 추억을 쌓는것입니다.

 

추억의 힘을 의심하지맙시다.

 

 

 

그사람의 추억속엔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음식을 먹고 웃는 장면이

기억속에 저장된다면 힘든일이 있을때 서로 버티는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음식을 먹는건 달콤한 추억을 먹는건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